국내 공연산업의 문제점 고찰 및 향후 시장 전망

2012. 5. 26. 16:07Reference

국내 공연산업의 문제점 고찰 및 향후 시장 전망





연구자는 침체의 일로를 걷고 있는 국가경제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소비성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공연산업의 풍전등화 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이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 공연예술인들이 어떤 지혜를 모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서 본 칼럼을 연재할 예정이다. 본 칼럼은 필자가 그동안 관객으로써, 오랜기간 마케팅 일선에서, 또 공연 제작에 참여했던 경험을 토대로 작성될 것이며, 개인적인 신념과 주관적인 의견에 상당 부분 의지함을 모두에 공지하는 바이다. 우선 첫 장에는 국내 공연산업의 현주소를 짚어 보고 공연예술산업이 한층 더 성숙해 지기 위해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에 대해서 피력하고자 한다.


2008년 말, 대학로 연극시장(2007년 서울기준, 연극 4작품 중 3작품이 대학로에서 상연되어 대학로 연극으로 통칭)의 가장 큰 화두는 공급자 입장에서 볼 때 '생존(生存)' 내지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연극열전2 시리즈의 야심찬 출발로 인해 상반기 다소 활기를 찾았던 연극계는 미국발 금융경색 시점을 전후로 불어 닥친 국내경기 한파의 영향으로 하반기에 접어 들면서 일부 공연의 흥행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동면에 들어갈 채비를 하는 듯 보였다. 연극을 위시하여 무대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퍼포먼스 등 대부분의 극예술에도 이와 같은 현상은 크게 다름이 없어 공연의 성패를 손익이라는 잣대로 쟀을 때 분기점을 넘는 작품이 전년대비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

이를 위기로 볼 것인가, 아니면 기회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으나, 현 상황에 대한 극복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다수의 중론이다. 이러한 현실은 수요자의 입장에서 볼 때도 좋지 못한 현상을 초래한다. 양질의 상품을 공급받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침체기가 오래 지속될 경우, 결국 고객이 시장을 외면하고 이탈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금년도 공연시장의 전반적인 특징과 문제점을 분석해 보고, 향후 시장에 대한 전망과 더불어 앞으로 공연산업이 나아갔음직한 방향에 대해서 다소 마케팅적 측면에서 조심스럽게 짚어 보고자 한다.


I. 국내 공연산업의 문제점 고찰



1. 시장기능 약화 (근본적 문제)

무대예술의 전형으로 일컫는 연극산업은 해방이후부터 오랜 기간동안 꾸준한 발전을 해 왔고, 심지어 아시아 최고의 시장이라 볼 수 있는 일본에까지 우리 선배들의 노고로 연극의 학문적 토대와 기법을 전파해 올 정도로 국내 연극의 산업화 토양은 이미 형성되어 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이 산업화가 공급자(제작자 및 학계/업계 종사자) 중심으로 그 뿌리가 내려지다 보니 시장기능이 약화 되고, 수요자는 공급자 중심으로 형성된 시장에 그저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즉, 시장경제원리가 무시된 일방향적 시장으로 점차 궤도를 이탈 하는데 있다. 말하자면, 산업화는 갖추었되 시장은 없는(Industry without market) 기형적 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비단 연극 뿐만 아니라 공연산업 전체에 있어 이처럼 시장이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점점 자생력을 잃게 되고, 만약 얘기치 못한 어떤 위협적인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결국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이다. 금융시장, 노동시장 등에서 보듯이 시장 기능이 상실되면 결국 막대한 예산과 물리적인 힘을 동원하여 강제조정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그 땐 이미 많은 업체가 도산을 하거나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는 등 이미 상당한 출혈을 겪은 다음일 것이다.

이처럼 시장을 수요와 공급 간에 형성된 암묵적인 계약으로 본다면 현재의 공연예술시장은 공급자가 생성한 시장에 수요의 유입을 강요하는, 시장의 본질에서 다소 벗어난 형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현상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시장기능을 상실함으로써 국내 공연산업의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기에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다음 호에는 공급자중심 공연시장의 문제점에 대해서 별도의 지면을 할애하고자 한다.


2. 인프라 및 정보 접근의 한계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이라는 획기적인 매체가 보편화 되면서 모든 산업 분야에 커다란 지각 변동이 일어나게 된다. 특히, '정보의 홍수'라 불리울 정도로 우리는 과도한 정보하에 노출 되어 있고, 때문에 정보의 생성과 전파가 매우 용이하다는 점은 괄목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들여다 보면 공연예술계의 실상은 다르다. 단적으로, 연간 몇 편의 뮤지컬과 연극이 올라가는 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몇몇 기관에서 집계는 하지만, 발표하는 수치가 다 달라 그 공신력은 심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심지어는 전문가들도 장르를 구분짓는 해석이 다르고 그 경계선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기관마다 천차만별의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산업 발판의 기본이 되는 '규모'에 대한 통계치는 말할 나위 없거니와 그 산업으로 소위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의 인구통계학적인 분석도 상당히 미미한 실정이다. 산업의 규모에 대한 척도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 연매출액 기준(뮤지컬의 경우 통상 2천~3천억 수준으로 짐작하고 있다.)의 통계치만이라도 정확히 산출되어 전체 산업의 규모를 판가름케 하고 나아가 미개척 시장의 잠재성장에 대한 부분까지 내다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특히, 국내 공연산업을 진두지휘하고 응집력을 모으고 비젼을 제시해 나가야 할 한국뮤지컬협회나 한국연극협회의 내부 구성을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뮤지컬협회의 경우만 봐도 고작 2~3명의 사무국 직원과 연간 1억원이 조금 웃도는 예산으로 한해 살림살이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적 인프라, 예산의 한계 등 현실적인 이유들이야 어쨌건 기초정보 수집, 가공, 배포에서부터 산업수요 예측, 시의적절한 정책제안(예. 경기 변화에 따른 업계 대응 방안) 내지는 중장기 비젼제시 등 협회의 보호하에 있는 수많은 업체, 배우, 스텦들에게 신뢰를 주는 선봉장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정보의 흐름이다. 이렇게 기본적인 정보들이 왜 제대로 흐르지 않을까? 문제는 이 정보들은 업계에서 발표하는 자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공연예술업계 현실상 또 관행상 정보의 공개를 꺼려 한다는 것이다. 정보를 각 업체에서 공개하지 않을 경우, 재무제표 하나 찾아 보기 힘든 폐쇄적인 구조에서 '정보의 홍수'는 남의 나라 얘기에 불과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시장의 성숙 및 관객의 의식수준 발달 속도에 비해 산업의 인프라는 늘 정체되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협회, 학계 및 업계가 정보는 나눌수록 상호 득이 됨을 인지하는 한편, 산업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노력을 다같이 경주하는 '공동체의식'을 가지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3. 산업기반 구축의지 미약

학계의 실상도 후한 점수를 주긴 힘들다. 연극, 연극영화, 뮤지컬 및 유사 학과에서 배출해 내는 학생들과 관련 학도의 길을 꿈꾸는 학생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또한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하지만, 무대예술은 무대에서 직접 뛰고 구르고 또 선배들에게 호된 훈련을 받으면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정설로 자리잡아 왔다. 물론 현장 경험만큼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으랴. 다만, 현장 경험만으로는 줄일 수 있는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요구하므로 공연예술산업 전반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학문적 뒷받침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다. 비록 영화보다는 역사나 규모면에서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평면의 미학으로 줄 수 있는 감동에는 분명 한계가 있기에, 발전 가능성만 놓고 본다면 무대예술은 영화에 뒤지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지금 당장은 참여 매체, 평론가수, 학문적 토양, 우수 인력, 사회적 관심도 등 아직 영화를 따라 잡을 수는 없겠으나, 10~20년 후, 아니면 그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뮤지컬이나 연극이 영화의 지위를  뛰어 넘을 지도 모른다. 그 시점을 앞당기기 위한 기초 체력이 바로 교육에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는, 학문적 기반(Academical Fundamental)이 확충이 안된다는 것은 아니라, 너무나도 더디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수 천억에 이르는 현재의 뮤지컬 시장은 아마 5~10년 후면 지금보다 아마 몇 배로 규모가 커져 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그 5~10년 후의 시장을 거론하려는 사람은 찾아 보기 힘들다. 당장 눈 앞의 행보도 챙기기 힘든데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이 무리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래도 이제 누군가는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공연산업은 지금쯤 분명 학문적 토대가 마련되어 더욱 그 지위를 공고히 해 나가야 함에도, 대학원(공연예술학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느꼈던 필자가 본 현실은 아직 학원가의 수준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해 보였다. 특히, 뮤지컬 분야는 학문적 체계도 미비하고, 전공이 개설된 학교도 많지 않으며 박사과정도 마련되어 있지 않아 제대로 된 석학들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실상이 우리의 현실을 더욱 남루하게 만든다. 어찌보면 학문으로써의 필요성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단초일 지도 모른다. 단지 5년만 더 내다 보면 될 것을...

상기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연평론가들에게도 아쉽다. 가장 아쉬운 점은 우선 평론가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평론가들도 각자의 특화된 강점들이 있을진대, 많은 평론가들이 배출되어 각자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 끊임없이 지적하고 대안과 개선방안도 제시 하는등 생산적인 작업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소위 이름있는 몇 사람이 전 분야를 종횡무진 뛰어 다닌다. 그러다 보니, 문제에 대한 지적은 하지만 속시원한 해답을 던져 주지 못할 때가 많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작품이나 프로덕션을 대상으로 시원한 매질을 해 줬으면 한다. 작품이나 프로덕션의 문제점이나 업계의 그른 관행과 폐해는 냉정하게 질책을 하고 관객들에게도 이를 알려 바른 정보를 줘야 한다. 공연을 보고 난 후의 '재미있더라, 없더라'라는 개인적인 느낌을 굳이 감출 필요는 없지만, 그 다음엔 분명 일침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그냥 좋은 게 좋다라는 식은 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상연되는 작품들 중 흥행에 성공을 하는 작품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실패하는 작품들의 원인은 아주 단순하다. 일축하자면, 프로덕션이 관객의 취향이나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이다. 누군가는 관객의 수준이 떨어져서라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데, 이는 아주 짧은 식견이 아닐 수 없다. 관객은 개인적인 감정이나 느낌에 의해서 울고 웃는 그냥 우리의 이웃인 것이다. 우리 문화를 즐기는 관객을 사고의 코드가 상이한 다른 나라의 관객과 비교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렇다면 평론가들은 우리 관객들의 욕구를 바르게 파악하고 이를 제작에 반영이 되도록 끊임없이 대안을 제시해 주고 있는가? 현재의 공연계 성적을 보면 아직 평론가들은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는 듯 하다. 평론단은 '2:8 법칙'의 2에 해당하는 전쟁터의 사령관임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4. 경영 효율성 부족

국내 공연예술산업의 특성상 한정된 국내시장만을 대상으로 다수의 제작사들이 경쟁을 해야 하는 과다경쟁적 현실에서 대규모의 자본을 투하하여 기업을 이끌어 나가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상당수 공연예술관련 업체들은 소유와 경영, 나아가서는 제작까지 겸하고 있는 형태로, 대량생산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기 전 산업혁명 직전 단계에 성행했던 소규모 가내수공업적 양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너무 심한 과장일까? 어쨌든, 분명한 것은 예술과 경영은 언뜻 보기에도 병존하기 힘든 명제라는 점이다. 기업가정신(enterpreneurship)이 부족하고, 기업 경영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예술가 내지는 비전문인이 경영을 겸하다 보니 당연히 많은 헛점에 노출될 수 밖에 없고, 항상 예술성과 상업성이라는 두마리 토끼 앞에서 고민에 빠지는 것이다. 때문에 뚜렷한 경영이념과 관리시스템을 갖추고 성과달성을 위해 체계적인 비지니스 모델을 구축해 나가는 기업이 그리 흔치 않은 것이며, 브랜드를 고착시키기 보다는 인지된 상품에만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예술과 경영을 분리하자는 의미도 아니며, 경영을 우선시하자는 의미는 더욱 아니다. 단지, 경영에도 전문성을 가미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예술은 예술가가 열심히 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열심히 하여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할 때 비로소 안정적인 구도가 그려짐을 역설하고 싶은 것이다.

* 출처 : (주)에이콤 인터내셔날 마케팅실장(★ 고독한 눈망울™ ★)